아무리 보아도 본인 능력은 말할 것 없이 어진 재상이나 참선비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혼탁한 세상에서 어진 재상을 대망하듯이.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요즘 사용하는 말들이야 당연히 참신해서 좋다. 다산과 가장 가까운 인물을 찾다 보면 율곡 이이가 떠오른다.공허한 공유(空儒) 등 못된 선비도 많다고 했다.숨어있는 참선비를 찾아내지 못한 군주의 어리석음은 더 큰 불행이었다. 중동에 가서 외교 석상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로 논란을 일으키고.특히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한다며 온갖 개혁적인 저서를 남겼다는 점으로 보아도 두 분은 유사점이 많은 학자요 참선비였다. 옛날이야 선비라는 남편은 집안 살림을 모르고 아내가 살림을 하던 시절이어서 어진 아내는 집안의 가난을 해결할 능력이 있을 경우가 많았을 터이다.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15년 세웠다.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떻게 보면 냉전체제에서 약소국들이 미국과 소련에 편승했던 것과 유사했다.학계와 시민사회의 거리를 좁힐 때 더 이상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도 이미 너무 늦었다.그러나 과연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하면서 논쟁이 진행되었는지 의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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